아르키메데스는 욕조에서 뛰쳐나오지 않았다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플라이 전자펜은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비해 그 가치가 현저히 낮아 보이지만, 사실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최근까지 학자들은 창의성을 두 가지 범주로 생각했다. 하나는 집적회로나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처럼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결과물을 산출하는 ‘Bic-C 창의성’이고, 다른 하나는 TV 광고나 플로리스트의 꽃꽂이처럼 일상적인 창의성을 가능하게 하는 ‘little-c 창의성’이다. 오리건 대학의 로널드 베게토(Ronald A. Beghetto)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제임스 코프먼(James C. Kaufman)은 혁신의 두 가지 유형이 모두 동일한 발달 과정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 연속선은 ‘little-c 창의성’을 지나 ‘mini-c’라는 창의성에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창의적 성과물의 모든 단계는 참신하고 개인적으로 유의미한 해석(mini-c)에서 출발하여 개인들 상호간에 참신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단계 (little-c)를 지나 훌륭한 창의적 성과(Big-C)로 나아가는 궤도를 따른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관점이다. 창의적 성과가 다른 유형의 성과와 같은 방식으로 달성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베게토와 코프먼은 이렇게 말했다. “Big-C 성과는 몇몇 개인들이 특별히 타고난 유전적 재능보다는 특정 분야에서 강도 높게 이루어진 계획된 연습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창의성을 연구하는 학자들로서 두 사람은 에릭슨과 그 동료들의 연구가 “뛰어난 창의적 성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확실하게 경험적으로 증명하고,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고 보았다.
요컨대 혁신가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조건에서 그런 위대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처리할 때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아는 실제 혁신가들의 경험과 대립하지는 않는가? 이에 대한 답은 앞의 유명한 주전자 실험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다.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주전자와 다섯 개의 예제를 받았다. 그들은 예제를 통해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다른 주전자에 옮겨 담는 똑같은 방식으로 문제 해결법을 연습했다. 연습이 끝난 후 참가자들에게 문제가 주어졌고, 그중 하나는 연습했던 것보다 더 간단한 방법으로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그 방법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문제에 너무 익숙하면 혁신적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실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사람들이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때의 상황과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실험 참가자들은 그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런 문제를 파악하는 일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아니었다. 주어진 과제에 대한 참가자들의 지식은 연구자들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예제를 통해 습득한 지식뿐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실험 참가자들이 창의적인 문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실험이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돕거나 방해하는 요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실험은 우리가 특정 유형의 문제 해결법에 지나치게 의존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보여 준다고 해석되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문제 해결 자체에 충실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 준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이 실험에서 우리가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예제를 미리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미리 연습까지 했던 사람들도 찾지 못한 간단한 해결책을 금방 알아냈다는 점이다. 그러나 참가자들 중에는 우리가 이 책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대상, 즉 관련 분야 연구에 오랫동안 몰두해 온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상당히 흥미롭고 널리 알려진 이 실험 결과에는 우리가 위대한 혁신가들의 경험을 통해서 살펴보았던 사실들과 모순되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놀라운 창의적 성과가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창작자 앞에 나타난다는 신화는 어떻게 된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다가 개어 보니 완성된 시 한 평이 눈앞에 떠올랐다는 콜리지는 시 못지않게 자기 홍보에도 뛰어났던 모양이다. 그가 자기 시를 잘 팔리게 하려고 그런 꿈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주장도 신빙성은 있다. 언젠가는 콜리지가 쓴 시의 초고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보면 그가 시집이 출간되기 전에 원고를 대폭 수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원본 시에서도 콜리지는 자신이 17세기에 나온 <순례기(pilgrimage)>라는 책을 읽다가 약 기운에 취해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눈앞에 “무릉도원에서 쿠빌라이 칸이 / 장엄한 환락궁을 지으라고 명하니------”로 시작하는 자신의 유명한 시가 펼쳐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평가 존 로이스(John Lowes)가 <순례기>에서 칸의 도시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을 찾아냈다. “쿠빌라이 칸이 상도(上都)에 위풍당당한 성을 지으라고 명하여------.” 모든 위대한 창조자들과 마찬가지로 콜리지 역시 기존 성과물에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처음 작성한 것은 전쟁터로 향하는 기차 안이 아니었다. 백악관에서 그 연설문 초안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순간에 관해서는 그 자신의 광범위한 저작들은 물론이고 그와 동시대에 살던 학자들의 어느 저작물에도 아르키메데스의 욕조 이야기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나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신화라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