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새로운 경험이 열려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대답했다. “새로운 경험에 열린 사람은 기본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있고 창조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들의 의식 한으로 더 많은 자극이 진입하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말 그대로 탁월한 개방성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인식한다. 유명한 실험 하나를 보면, 그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유튜브를 열어 검색창에 ‘Awareness Test simons Chabris’ 혹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치면 나오는 짧은 영상을 보자. 하버드대학교의 실험심리학자인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는 100명 이상의 피험자에게 똑같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하얀색 옷을 입은 농구선수 세 명. 피험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하얀색 옷을 입은 농구선수의 패스 횟수를 세는 것이었다. 다 세었는가? 당신이 패스 횟수를 맞혔는지 알아보기에 앞서, 훨씬 더 흥미로운 일이 남아 있다.
당신은 혹시 선수들 사이에 섞여 있던 검은 고릴라를 보았는가?
예상치 못한 고릴라를 인식했다면 당신의 개방성 지수는 상위권이다. 그러나 보통은 횟수를 세는 데 열중하여, 새로운 존재가 섞여 있음을 전혀 몰랐을 확률이 높다. 실험에서는 네 명 중 세 명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대부분은 주어진 질문(하얀색 옷을 입은 선수의 패스 횟수)에만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집중 능력 덕에 우리는 과제를 잘 풀 수 있었으며, 학창 시절에는 이런 능력으로 칭찬도 받았을 것이다. 우수한 학생은 딴 곳에 정신을 팔지 않고 구구단이나 영단어 암기에 온전히 집중했을 것이다. 반면, 온갖 일에 주의를 빼앗기는 학생들은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이런 주입은 계속 영향을 미쳐서 편견을 더욱 강화한다. 뇌는 제한된 자원을 아끼기 위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만 집중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카리나 크라이츠가 이런 뇌의 역설 효과를 입증했다.
당장 몰두하는 일과 주변의 자극을 명확히 구분할수록, 주변의 자극은 우리 눈에 덜 띈다.
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을 흐릿하게 처리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부주의맹’이라 부른다. 높은 지성을 갖고 있대도 이 현상은 막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한 나무들 앞에서 숲을 보지 못하고 농구선수 사이에서 고릴라를 보지 못한다. 물론 부주의맹 덕분에 우리는 과제를 효율적으로 끝낼 수 있으며, 중요한 일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다. 이것들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VUCA 세계에서 기존 규칙은 통하지 않는다. 좁은 시야로 가능한 과제들은 표준화가 가능하니 앞으로는 점점 더 인공지능에 맡겨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과 신경망은 각 전문 분야에서 아주 완벽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되어 그런 과제를 수행하는 인간의 능력은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유방 조영술 사진을 분석하는 일은 매우 큰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수하기 쉬운 데다가 단조롭다. 이제는 과학자들이 인공지능을 학습시켜, 의사의 도움이나 후속 검토 없이 유방 조영술 사진에서 종양을 찾아내게 한다. 훈련된 인공지능의 적중률은 약 90퍼센트에 달한다. 다시 말하면, 이미 인공지능은 유방에 생긴 변화를 전문의 못지않게 잘 찾아내고 있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의료 영상 분석처럼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일에서도 인간의 지능이 쓰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능은 이제 기술에 맡길 수 없는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