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짓이 혁신으로 바뀌는 과정
벌집나방은 플라스틱을 먹어 치운다. 스페인 생물학자 페데리카 베르토치니가 발견한 사실이었다. 양봉이 취미였던 베르토치니는 벌통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벌집나방 애벌레를 발견했다. 이 애벌레는 벌집에 퍼져 밀랍을 먹어 치웠다. 호기심이 동한 베르토치니는 애벌레를 봉지에 넣고 관찰했다. 얼마 후 애벌레들이 비닐을 갉아먹고 밖으로 나왔다. 베르토치니는 이 현상을 끝까지 파헤쳤고, 애벌레 백여 마리가 12시간 안에 비닐봉지 92밀리그램을 먹어 치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벌집나방 애벌레는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방법보다 더 빨리 플라스틱을 분해했다. 그들의 소화체계가 밀랍에 맞춰져 있고, 밀랍의 화학구조가 폴리에틸렌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생각하면 매우 놀라운 뉴스이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진보는 실험실과 노트북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장 기발한 발견은 종종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긴다. 이런 우연한 발견을 영어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번역어가 마땅치 않은 이 단어는 페르시아 동화 <세렌딥의 세 왕자(The Three Prices of Serendip)>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의 스리랑카는 한때 세렌딥이라 불렸다. 전설에 따르면, 세렌딥에 강력한 왕과 세 아들이 살았다. 왕은 세 아들에게 생명을 구하는 주요한 재능을 키워주고자 했다. 그래서 세 아들에게 권력과 황금 대신 뛰어난 관찰력과 감각을 가르쳤다. 세 아들은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탁월해졌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함을 볼 줄 알았고, 서로 관련 없는 정보들을 통합할 줄 알았다. 그들은 탁월한 관찰력으로 어디서든 모든 상황에서 올바르고 영민하게 처신했다. 독일의 현대판 세렌딥의 왕자를 꼽는다면 홀게르 자임, 토비아스 발링, 제바스티안 클라인, 니클라스 얀센이 있을 것이다.
이 네 사람은 2019년 말에 도서 요약 앱인 ‘블링키스트(Blinkist)’로 전 세계 1,200만 이용자를 감탄시켰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연결했고 거기서 새로운 발견을 해냈다. “지난 몇 해 동안 점점 더 많은 책이 읽히지 않은 채 책꽂이에 쌓여만 갔어요.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묻게 되었습니다. 아이디어와 기획을 전달하는 데 정말로 300쪽이나 필요할까? 이런 물음에서, 책의 내용을 요약하여 앱으로 읽어주는 아이디어가 싹텄다. 블링키스트 이용자들은 15분 안에 책 한 권의 핵심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블링키스트는 아주 적절한 슬로건을 택했다. ‘Serving curious minds(호기심 많은 사람을 위한 서비스)’.
현대판 세렌딥의 왕자와 공주는 전통적 의미의 지성만 갖춘 게 아니다. 그들은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보기 때문에 빠르게 트렌드를 이해하고 기회를 감지한다. 그들의 우수성은 미묘하고 엉뚱한 특징을 감지해 내는 능력에서 기인하며, 그들의 호기심 많고 깨어 있는 정신은 편향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미친 짓으로 폄훼하는 일을 황금으로 바꾼다.
과학자, 예술가, 작가 등 창조적인 사람들은 늘 그렇게 일한다. 프랑스 화가 이브 클라인은 자신이 발명한 진한 군청색 물감만으로 캔버스를 채웠다. 아이폰 발명가 스티브 잡스는 전화기, 사진기, MP3 플레이어를 하나의 기기로 합쳤다. 호텔 사업가 클라우스 하우버는 950미터 높이에 제비집처럼 걸려 있는 ‘아웃도어 식당’을 짓고, 범접할 수 없는 자연에서 요리와 문화를 제공한다.
세렌디피티는 뜻밖의 것을 만나는 행복이다. 넘어진 자리에서 예기치 못한 것을 발견하여 빛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세렌디피티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추구해야 우연한 영감이 혁신, 행복, 성공의 열쇠가 된다. 세렌디피티에 주의를 기울이고 감지할 만큼 민첩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우연한 행운을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카이로스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금세 사라진다. 그의 앞머리는 길게 늘어뜨려져 있지만, 뒤통수는 벗겨져 있다. 앞에 남아 있는 머리채를 주저 없이 움켜쥐어야만 기회의 신을 붙잡을 수 있다. 머리채를 낚아챌 타이밍을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 일상에 갇혀 있으면 그런 일이 특히 더 자주 발생한다. 일상에서는 즉흥적 아이디어의 가치를 탐구하는 것보다 책상에 앉아 루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뭐든지 허용되고 의무는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우리는 세렌디피티를 최대한 활용하게 된다.
독일 심리학자 다니엘 멤메르트는 핸드볼 선수를 대상으로 실행한 실험을 이를 증명했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많이 내릴수록 오히려 행운의 기회를 자주 놓쳤다. 즉 좋은 위치를 선점한 동료 선수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다. 감독의 지시 때문에 선수들은 특정 전술만 신경 쓰느라 기회를 보지 못했다. 이와 비슷하게 기업에서는 압박과 표준이 시야를 좁힌다. 세렌디피티 효과를 얻고 싶다면, 거친 아이디어를 비옥한 땅에 던질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