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엑설런스(Excellence)<54>--작은 일을 무시하지 않기

리첫 2022. 12. 6. 21:29

 

작은 일을 무시하지 않기

 

창조성, 빅픽처, 애자일팀, 격동기, 수행기, 새로운 직업 세계의 어휘들은 루틴이나 꼼꼼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어휘들은 우리에게 다음을 암시한다. 모두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역량을 실현할 수 있고, 해도 되며, 해야 한다! 모두가 큰 그림을 갖고 일하고 큰일에 공헌한다! 일과 삶이 모두 자유롭고 활기차진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만이 무미건조한 통계수치를 따지고 거절을 굴욕으로 여긴다! 애석하게도 이때 우리가 간과하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창조성은 훈련이 더해져야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설익은 아이디어와 첫 스케치를 누군가가 구체화할 때 비로소 위대한 기업, 탁월한 제품, 사랑받는 서비스가 탄생한다.

 

독일의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구드룬 펜도르프<아스테릭스(Asterix)> 만화 전집 29권을 독일어로 옮겼고, 수백 명에 달하는 캐릭터에게 독일어 이름을 지어주었다. 펜도르프는 이런 업적으로 2020년에 독일연방 공로훈장을 받았다. 개그와 말장난을 옮기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글자 수 맞추기가 고된 작업이었다. 말풍선 안에 딱 맞게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펜도르프가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글자 수를 세는 게 무척 버거웠어요. 긴 독일어 번역 문장이 작은 말풍선 안에 들어가도록 일일이 세어야 했거든요.”

 

만화 번역이든 백신 개발이든, 혁신 프로젝트는 높은 정확도와 충분한 자원, 그리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체력을 요구한다.

 

바이오테크 기업가 올페르트 란트콘스탄츠 란트는 첫 코로나 진단 키트를 개발했다. 란트 부부는 20201월 우한의 감염 뉴스를 접했을 때 귀 기울여 들었고,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음을 직감하여 코로나 바이러스와 게놈 서열 보고서를 놓치지 않고 읽었고, 진단 키트 생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전의 전염병 보고서에서 영감을 얻어 테스트관을 합리적인 가격에 대량으로 주문했다. 그렇게 란트 부부는 3월부터 매달 수백만 개의 진단 키트를 60개국 이상에 제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직원과 함께 온종일 일했다. 자녀들 역시 일손을 거들기 위해 대학 공부를 중단했고 수작업으로 5만 개에 라벨을 붙였다.

 

솔직히 지금 같은 시대에 성실성은 조금 밋밋해 보인다. 그러나 작은 일을 무시하면 큰일은 오지 않는다. 보고서 읽기, 유리관 주문하기, 가격 따지기, 라벨 붙이기, 이 작은 작업들이 없었다면 진단 키트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탁월함은 큰 생각을 해내는 데 있지 않다. 탁월함은 작은일 때문에 큰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게 하는 데 있다.

 

코로나 초기,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위기에 특히 잘 대처하는 유럽국가로 꼽혔다. 첫째, 중환자실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고, 둘째, 의료 시스템을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잘 갖추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의료 정책은 최고 수준으로 바이러스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간단하고 저렴한 조치가 미비했다. 바로 마스크가 부족했던 것이다. 상점들에 마스크가 없었고 있다 해도 너무 비샀다. 2월 후반에는 마스크 가격이 개당 0.45유로(한화 약 600)에서 13.52유로(한화 약 18,000)로 뛰었다. 도한 중환자실에 쓸 약이 부족했다. 이런 실패의 원인은 한 가지로 해석된다. 단순 일회용품의 생산 능력 유지는 고도로 발달한 서구 산업이 보기에 너무 진부했던 것이다.

 

더크워스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이제 성실성이 어제의 것이 아님을 안다. 다섯 가지 주요 자질 중에서 성실성이 탁월함에 가장 많이 공헌한다. 그러나 성실성은 두 가지 모습으로 온다. 믿음직스러움과 야심 찬 목표지향, 더크워스는 두 가지 성실성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정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훈련한다. 목표지향적인 사람도 그렇게 하지만 그들은 성과를 염두에 둔다. 그러므로 성실성이 탁월함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피나는 노력과 높은 목표, 두 가지를 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의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인 요아나 말비츠는 떠오르는 혜성으로 통한다. 말비츠는 강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아주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이에요. 나뿐만 아니라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도 자신 있게 공연에 임할 수 있도록 성실히 훈련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목표지향이다. 끊임없는 훈련은 목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감과 해방감을 위한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