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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T<5>--‘잠재력’과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의 차이

리첫 2023. 1. 30. 15:15

 

잠재력과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의 차이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해에 <스펠바운드(Spellbound)>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됐다. 영화는 남학생 세 명과 여학생 다섯 명이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비(Scripps National Spelling Bee)--단어의 철자를 한 자씩 발음해 맞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어 대회) 결선을 준비하고 겨루는 과정을 따라다니며 보여준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펠링 비 결선은 해마다 워싱턴에서 3일 동안 개최되며 평소 상업성이 높은 스포츠 경기를 주로 방송하는 ESPN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된다. 여덟 명의 학생은 이 결선에 진출하기 위해 먼저 전국 각지의 철자 맞히기 대회에서 수백 개 학교의 수천 명 학생들을 꺾어야 했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어려워지는 출제 단어의 철자를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맞혀서 학급, 학년, 학교, , 도의 모든 학생 중에서 1등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스펠바운드>를 본 나는 궁금해졌다. ‘schottische’(스코틀랜드 춤곡)‘cymotrichous’(‘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가진이라는 뜻) 같은 단어의 철자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맞히려면 제 나이보다 발달된 언어 능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릿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까?

 

나는 스펠링비 우승자 출신으로 현재 대회 사무국장인 페이지 킴블(Paige Kimble)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활달하게 응대해주었다. 킴블도 나만큼이나 우승자들의 심리 구조를 알고 싶어 했다. 그녀는 몇 개월 후에 치러질 결선에 진출한 273명이 확정되는 대로 그들에게 설문지를 발송하기로 했다. 설문지를 작성하는 학생에게는 후한 보상이 될 25달러짜리 상품권을 답례로 주겠다는 약속에 결선 진출자의 약 3분의 2가 내 실험실로 설문지를 보내왔다. 가장 나이가 많은 응답자는 대회 규정에 따른 연령 상한선인 열다섯 살이었고, 가장 어린 참가자는 겨우 일곱 살이었다.

 

결선 진출자들은 그릿 척도를 작성했을 뿐 아니라 철자 연습에 들이는 시간도 보고했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주중에는 하루 한 시간 이상, 주말에는 하루 두 시간 이상 연습한다고 했다. 평균은 그랬지만 전혀 공부하지 않은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지난주 토요일에 아홉 시간이나 공부했다는 참가자도 있을 정도로 편차가 컸다.

 

나는 결선 진출자의 일부만 별도로 표집해서 언어지능검사를 실시했다. 집단 전체로 봤을 때 참가자들은 비범한 언어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참가자들 간의 점수 차이가 상당히 커서 어떤 아이들은 언어 영재 수준의 점수를 받은 반면에 어떤 아이들은 그 연령대의 평균점수를 받았다.

 

ESPN에서 결선 중계방송을 하던 날, 나는 긴장되는 마지막 순간 열세 살인 아누락 카시압(Anurag Kashyap)A-P-P-O-G-G-I-A-T-U-R-A(‘앞꾸밈음이란 음악 용어)의 철자를 정확히 맞혀 마침내 우승을 거머쥐는 장면까지 쭉 지켜봤다.

 

그렇게 최종 순위까지 학보한 뒤에 데이터 분석에 들어갔다. 그 결과, 결선이 치러지기 몇 달 전에 측정한 그릿 점수가 참가자들의 최종 성적을 예측해주는 변인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릿이 높은 아이들이 나중 라운드까지 진출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릿이 높은 아이들은 더 많은 시간 동안 공부하고 더 많은 스펠링 비 대회에 출전했다.

 

재능은 어땠을까? 언어 지능 역시 어느 라운드까지 진출하지 예측해줬다. 하지만 언어 지능과 그릿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또한 언어에 재능이 있는 참가자들이 재능이 덜한 참가자들보다 더 오랜 시간 공부하지도 않았으며 스펠링 비 대회 출전 경력이 더 많지도 않았다.

 

그릿과 재능이 별개라는 사실은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다시 드러났다. 그 연구에서는 SAT 점수와 그릿 점수가 반비례 관계로 나왔다. 연구의 표본 가운데서 SAT 점수가 높은 학생들의 평균 그릿 점수는 또래 학생들보다 약간 낮았다. 이 연구 결과와 그동안 수집해 온 다른 자료들을 종합해서 얻은 통찰이 향후 내 연구의 기본 지침이 됐다. 그것은 우리가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과 그 잠재력의 발휘는 별개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