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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어달인(1)-만지로!

리첫 2006. 6. 13. 11:57

"귀로 듣는 영어를 강조한 만지로" 성(姓)도 없이, 이름만 가진 14살의 어부가 배가 난파(難破)되어 무려 토쿄(東京)의 남쪽으로 약 600 km나 떨어진 무인도(無人島)에 닿았다. 그러나, 우연치 않은 운명에 휘말려, 그 후, 그 사건은 만지로(1827-98)에게 세상의 눈을 뜨게 한 계기(契機)가 되게 하였으며, 일본이 외부세계로부터 여전히 단절(斷絶)되어 있던 당시에, 그는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에도(江戶)시대(1603-1868)가 거의 끝날 무렵, 그는 귀국하였는데, 그가 미국에서 쌓은 경험(經驗)을 바탕으로 하여 그는 한낱 난파선의 표류자(漂流者)에서 일약(一躍) 일본 영어교육의 초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선구자(先驅者)로 변신(變身)을 한 것이다.

 

그들은 1841년 1월에 지금의 코치(高知)현을 출발한 후에, 매우 심한 폭풍우를 만나 만지로와 4명의 어부들은 토리시마(鳥島) 근처에서 몇 달을 지냈는데, 잔 하우랜드(the John Howland)라는 미국의 포경선(捕鯨船)을 운좋게 만나, 구조(救助)되었다. 그 배에 타자, 만지로는 다른 선원들에게서 영어를 열심히 듣고 배우더니, 급기야 잔 멍(John Mung)이라는 별명(別名)으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그 당시, 포경선은 선원들의 구성이 인종시장(人種市場)이나 마찬가지였다.

 

1843년, 그 배의 선장인 윌리엄 휫필드(William Whitfield)가 만지로를 자기 고향인 메사추세츠의 훼어헤이번(Fair haven)으로 데리고 갔다. 그 곳에 살면서 처음으로 학교에 갈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그가 미국에 유학(留學)한 "최초의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만지로는 마침내 위험을 무릅쓰고 1851년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나고야(名古屋)에서 의사(醫師)인 71세인 나카하마 히로시라는 만지로의 증손자(曾孫子)의 말에 의하면, 때가 때인 만치, 미국의 페리 매튜(Mattew Perry)제독(提督)이 일본과 외교 및 통상 관계를 맺고자, 포함외교(砲艦外交)로 위협하자, 일본의 조야(朝野)가 떠들썩하였고, 만지로의 귀국이 그의 실력을 발휘(發揮)하기에 시의적절(時宜適切) 하였다.

 

만지로는 에도(지금의 토쿄)로 불려 갔는데, 그는 당시에 미국에서 직접 지식을 습득(習得)한 유일한 일본인 이었다. 드디어 만지로는 막부(幕府)에서 일할 것을 명(命받)았고 나카하마라는 성(姓도) 하사(下賜)받았다. 그러나 막부는 그 다음해에 페리가 다시 일본에 왔을 때, 그에게 통역(通譯)을 맡기지 않았다.

 

일본에 돌아온 후, 만지로는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교재를 집필(執筆)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올 때, 몇 권의 책을 가져 왔는데, 거기에는 "기초문답식해설서"라는 시리즈로 된 "영문법", 몇 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책의 복사본(複寫本)이 1862년에 막부에의해 출간(出刊)되었고, 그 당시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의 필독서(必讀書)가 되었다.

 

또한 그는 1859년에 포켓사이즈인 영어회화책을 썼는데, 그보다 한 해 전인 1858년에 일본과 미국간에 우호통상조약(友好通商條約)을 비준(批准)하기 위하여 막부측의 대표단(代表團)이 태평양을 건너야만 되었다. 대표단이 미국의 포화탄(Powhatan)이라는 배를 타고 워싱턴(Washington)으로 향하였는데, 그 때 막부가 네덜란드에서 구입한 칸린마루(咸臨丸)라는 큰 배로 에스코트(escort)하게 하였다. 물론 통역관(通譯官)인 만지로는 그 배에 동승(同乘)하였다.

 

그 회화책은 만지로의 영어실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特性)이 살려져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책을 통하여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하여 영어를 배웠다는 사실이다. (요즘말로 하면 듣기평가를 가장 중시하였다는 얘기이다.) 중요한 사실은 단어마다 발음법(發音法)이 카타카나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영어가 카타카나로 씌어진 것 보다 그 단어의 실제 발음법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1993년, "나의 잔 만지로"(My John Manjiro)라는 책에서 나카하마는 그의 증조부(曾祖父)가 영어를 배웠던 방법을 알려주는 그 회화책에 들어 있는 내용 중 몇가지를 예로 들어 주었다. 가령, 8(eight)에 대하여 만지로는 "에에토"(eito)보다 "에에"(ei)라고 카타카나를 사용했고, 주로 그 책으로 영어를 배운 많은 일본인들이 그 단어를 위와 같이 발음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각 철자(綴字)를 완벽(完璧)하게 발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그는 "set-up"(셑엎)을 카타카나로 "setto appu"(세또아푸)가 아니라, "seta affu"(세타아프)로 표기(表記)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지로의 영어교육에 대한 공헌(貢獻)이 지대(至大)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에는 제 증조부께서 모든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려는 것 보다는 영어로 뭔가를 묻는 사람에게 그 분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셨을 거예요. 그렇게만 해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테니까요."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만지로에 관한 책을 썼던 전 주니치신문의 기자(記者)였던 나리타 카즈오는 "오늘날 학교의 영어교육에 있어서 만지로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영어의 읽는 능력"을 강조(强調)하는 영어교육제도가 메이지시대(1868-1912)에 확립(確立)되기 전에는, 누구나 처음으로 영어를 대하더라도, 만지로의 "귀를 통해 영어를 배우는 방법"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저는 영어를 귀로 배우는 것(만지로가 처음으로 시작했던)이 좋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이야말로 영어교육의 출발점(出發點)이죠."라고 나리타는 말하였다. "저는 우리들이 그 때(만지로가 영어를 가르치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 리처드 황(010-8865-0582)

원문: www.yomiuri.co.jp/45th-e/45th_08a.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