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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어달인(2)--후쿠자와 유키치

리첫 2006. 6. 13. 12:04


번역: 리처드 황(010-8865-0582)

 

당시 25세의 난학자(蘭學者)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1859년 어느 날, 요코하마(橫濱)로 나들이를 하고서 시무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요코하마는 일본의 항구도시로 일찍이 일본이 5개국과 통상조약(通商條約)을 맺고, 외국인에게 개방(開放)되었다.

 

"내가 외국인 상점에 들렀는데, 내말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나 또한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구."라고 후쿠자와는 그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Fukuojiden".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네덜란드 책을 읽으려고 열심히 공부 했건만, 그 모든 것이 수포(水泡)로 돌아갔어." 그러나 요코하마에서 돌아온 그 이튿날부터 현재는 "언어(言語)의 달인(達人)"으로 일본인의 기억속에 살아있는 후쿠자와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副應)하여, 한자에서 네덜란드어로, 네덜란드어에서 영어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당시에는 영어를 가르쳐 줄 일본인이 거의 없었으므로, 후쿠자와는 영-란사전을 한권 사서 영어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매일밤 영어문장을 네덜란드어로 번역(飜譯)하였다. 1860년, 후쿠자와는 칸린마루(咸臨丸)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방문(訪問)하였는데, 그 곳에서 그는 웹스터 사전(事典)을 1권 구했다. 2년 후에, 그는 유럽방문 사절단(使節團)에 포함되었다.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수집한 정보는 "서양사정"(西洋事情)이라는 그의 유명한 저서의 자료가 되었다.

 

그 책은 유럽에서의 생활을 묘사(描寫)하였다. 그 여행은 또한 그가 영어단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외국인에게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사전에는 충분한 설명이 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일본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막부정권(幕府政權)은 "평등(平等)"과 "자유(自由)"(앞의 두 단어는 후쿠자와가 최초로 사용했음.)라는 개념(槪念)을 알 까닭이 없었다.

 

따라서 영어는 후쿠자와가 서양문명에 관한 정보를 흡수(吸收)하는데 중요한 수단(手段)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훗날 그의 동포들, 즉 일본인들에게 전파(傳播)하였다. "자기의 글에 어려운 한자(漢字)를 사용하여 번역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후쿠자와는 영어를 간단하고 읽기쉬운 일본어로 번역하였다."라고 세인트 앤드루(St. Andrew)대학의 교수인 야나부 아키라가 말했다.

 

"당시 후쿠자와는 다른 번역가(飜譯家)들과는 달리, 평범한 일본인들에게 서양문명을 알려주는 데에 되도록 쉬운 표현을 사용해야 했기에, 그는 성공한 번역가로 인정받을 수가 있었다. 그의 제자(弟子)들의 말을 빌리면, 후쿠자와는 서양서적의 중요한 내용을 공부하고, 다소 엉뚱하더라도, 단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일본어로 번역하였다.(즉, 직역(直譯)보다 의역(意譯)을 선호(選好)했다. 정말! 탁월(卓越)한 번역가임!)

 

후쿠자와는 영어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라도, 그의 영어회화는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휘트니 클라라(Clara Whitney)(그녀는 칸린마루호의 선장(船長)인 카쓰카이슈의 아들과 결혼하였음.)가 쓴 일기(日記)에 의하면, 후쿠자와는 말할 때,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 사용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후쿠자와씨는 완전히 헛갈리게 영어와 일본어를 혼용(混用)하여 말하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가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요."라고 썼다. "예를들면, 'Mr. Kuriyama is hontoni kind man, keredomo he is taiso busy kono setsu, yes?"(Mr. Kuriyama is a very kind man, but he is extremely busy of late.)등과 같이... 후쿠자와가 영어를 배우는 방식은 발음법(發音法)이나 의사소통수단(意思疏通手段)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읽는데 중점(重點)을 두었는데, 말하자면 "변칙적(變則的)인 방법"(irregular method)을 통하여 영어를 배우는 것인데, 이것은 곧 영어학습자에게 하나의 중심(中心)을 잡게 해 주었다.

 

따라서 외국인에게 영어를 배우는 "규칙(規則)에 따른 방법"(direct method)에 의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이 입증(立證)되었다. 케이오(慶應)대학의 교수인 카와스미 테쓰오에 의하면, "후쿠자와의 영어는 결코 못하는 영어가 아니다. 다만, 그 당시에 그가 필요로 한 것은 영어책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能力)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서양사상(西洋思想)을 배우고, 관련문헌(關聯文獻)을 번역하고,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서양사정의 이해를 돕게 하려는 심정(心情)이었죠."라고 카와스미는 말했다. "그는 자연스레 그 목적을 달성(達成)했습니다." 잔 만지로처럼, 후쿠자와는 외국어(한자, 네덜란드어, 영어 등.)와 외국문물(外國文物)에 실제로 이해력(理解力)이 빨랐던 것 같다.

 

그 두사람이 영어를 배운 방식은 매우 달랐어도, 그들 각자의 목적(目的)에는 부응하였다. "후쿠자와로부터 요즘의 일본인들이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느냐에 대한 통찰력(洞察力)을 가져야 하며, 영어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음미(吟味)해야만 합니다."라고 카와스미는 말했다. "우리 일본인들이 만지로처럼 영어를 말하고, 후쿠자와처럼 영어를 읽을 수 있다면 아주 이상적(理想的)이라고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