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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로 키우는 논술내공]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

리첫 2006. 11. 26. 11:45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
흥미유발, 템포, 타이밍-설득을 위한 논리 트라이앵글
한겨레
논리로 키우는 논술내공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비처럼 날다가 벌처럼 쏴라.” 무작정 인상 쓰고 덤비지 말고, 유연하게 접근해서 효과 있게 때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숙한 복서들은 벌처럼 날다가 나비처럼 때리곤 한다. 잔뜩 긴장하여 무리할 뿐, 제대로 된 유효타 하나 건지지 못한다. 권투에서는 힘 줄 때 주고 뺄 때 빼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논리도 그렇다. 설득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청 높인다고 커지지 않는다. 사랑 고백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쏟아져 나오는 표현마다 다 절실하지만, 정작 모아 놓고 보면 자기 말이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을 터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전달할 지 계획을 짠 뒤 입을 열도록 하라.

 

액션 영화를 예로 들어 보자. 엄청난 돈을 들여 ‘스펙터클’하고 ‘판타스틱’한 장면들을 줄줄이 엮었다 해도 타이밍을 잃으면 끝이다. 액션물이라고 해서 두어 시간 내내 화려한 액션만 펼쳤다가는 역효과만 난다. 훌륭한 감독은 절정의 경험을 언제 배치할 지 안다. 시작된 지 10분 안에 주인공들을 관객들과 친숙하게 만들고, 꼭 그만큼 뒤에 갈등과 위기가 일어나고, 손에 땀이 배어 든 순간 화려한 액션이 벌어진다.

 

잡지도 그렇다. 목차를 보면 권두사처럼 약방의 감초같이 끼어 있을 뿐, 좀처럼 눈이 가지 않는 글들이 꽤 있다. 왜 이런 글들을 실었을까? 대개 독자들은 흥미 있는 부분만을 본다. 하지만 나머지 내용은 끌리는 부분을 두드러지게 한다. 경제학자 파레토(V. Pareto)의 ‘80:20의 법칙’은 여기서 통한다. 매장에서 잘 팔리는 물건은 대개 전체의 20% 정도다. 그렇다면 나머지를 버리고 잘 나가는 20%만 전시하면 어떨까? 판매량이 오히려 준다. 대형 서점이나 동네 책방이나 팔리는 책은 거의 같음에도, 사람들은 큰 서점을 더 좋아 한다. 왜 그런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과 글의 타이밍을 어떻게 잡을지 감이 설 터다.

 

템포의 조정도 중요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논리의 영원한 진리다. 늘어지는 글이나 말치고 상대를 감동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리학자들은 내시경 검사로 이를 증명해 보였다. 첫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빨리 끝나지만 짧은 순간 아주 고통스러운 검사를 했다. 두 번째 부류에게는 통증이 길게 이어지지만 못 견디게 아픈 순간은 없게끔 오랫동안 검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두 무리에게 다음에 한 번 더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어느 쪽이 더 많이 하겠다고 나섰을까? 길게 검사를 한 쪽이었단다.

 

사람의 뇌는 겪은 일 중에서 가장 깊고 확실한 부분만을 기억에 남긴다. 짧은 순간의 극도의 아픈 추억은 고통스러운 긴 순간들을 누르고도 남았다. 설득에서도 그렇다. 선동의 달인이었던 히틀러(A. Hilter)는 연설에서만큼은 ‘박수칠 때 떠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연설은 천천히 달아오르다가 이내 울부짖음에 가까운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은 결코 완만하지 않다. 단두대 칼날을 내리는 듯 단호한 손동작과 명쾌하게 끊어지는 단어들, 박수가 터져 나오면 히틀러는 주저 없이 등을 돌려 단상을 내려와 버린다. 독일어를 한마디로 못 알아들어도, 그의 연설하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상대 가슴에 느낌표를 찍으려면 절정에 뒤이어 군더더기를 붙이지 말라.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도 똑같은 충고를 한다. 그는 심지어 ‘수정본=원본-10%’라는 공식까지 내세운다. 줄여도 되는 부분은 과감히 빼 버리라는 뜻이다. 그는 꾸밈말을 ‘잡초’에 빗댄다. 빼버려도 말이 된다면, 모두 줄이고 버려라. 글에서 속도감은 그만큼 중요하다.

»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하지만 서두르는 게 능사는 아니다. 사용 설명서 읽기가 왜 버거운지 떠올려 보라. 급하게 결론으로만 치닫는 글은 마음 불편하다. 철학자 칸트(I. Kant)의 강의는 항상 인기가 있었다. 그는 항상 재밌고도 흥미진진한 일화로 수강생들의 머리와 마음을 달궜다. 그런 뒤에 짧고 분명하게 강의의 핵심을 이야기 하고, 청중들의 눈에 더 듣고 싶어 하는 기운이 남아있을 때 강의를 그칠 줄 알았다.

 

재미있는 도입과 늘어지지 않는 템포, 그리고 적절할 때 주제를 강렬하게 펼치는 타이밍. 이 셋은 설득을 위한 ‘논리 트라이앵글’이다. 논리 트라이앵글 안에 자기주장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그대는 이미 논리의 달인이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뇌를 깨우는 논리 체조]

다음 글을 ‘논리 트라이앵글’에 맞추어 설득력 있게 고쳐 보세요.

 

< 주변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 누구는 청소하고 누구는 버리는 사람인가? 왜 사람들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 짝 철수만 해도 그렇다. 한 번도 주변이 쓰레기통같이 지저분하지만 정작 본인은 쓰레기통 근처에 가보는 일도 없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성실하고 똑똑하고 양심적이며 예쁘기까지 한 영희를 보고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

 

체조 연습

 

스티븐 킹은 “글을 쓸 때 한 번은 서재 문을 닫고 쓰고 한번은 열어놓고 써라”라고 충고합니다. 쓸 때는 집중해서 쓰고 퇴고 단계에서는 비판이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아울러, “퇴고는 (자신의 원고가) 어느 고물상에서 구입한 골동품처럼 낯설게 보일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묵힌 후에 해라”고도 말합니다. 논리 초보자라면 논리 트라이앵글을 퇴고하고 검토할 때 사용하도록 하세요. 주장을 펼치기 전에 높은 검열 기준에 먼저 신경을 쓰면 주눅이 들기 때문입니다. 논리 트라이앵글로 글을 고치고 다듬는 가운데 논리 감수성은 빠른 속도로 자라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