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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논술 ‘배경지식’이 성패를 좌우한다

리첫 2006. 12. 25. 10:45
통합논술 ‘배경지식’이 성패를 좌우한다
한겨레
»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비하려면 각 과목의 내용을 꼼꼼히 파악한 뒤 과목간 공통 항목을 정리해 가며 공부하는 것이 좋다. 2008학년도 대입 논술 대비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겨울방학 동안 논술고사 준비하는 고교생들에게 /
 

논술을 생각하면 ‘귤화위지’라는 말이 떠올라. 회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로 변한다는 고사성어 말야. 논술 하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가 떠오르는데, 그것이 우리나라로 건너온 뒤 탱자로 변해 버렸어.

 

왜일까. 우리가 논술을 실시하는 것은 논술의 교육적 가치를 인식해서가 아니라, 무디어진 내신과 수능의 변별력을 논술로 회복하려는 의도가 배후에 깔려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 비비꼬고 뒤틀고 할 수밖에. 하지만 어떡하니. 대학은 가야겠는데 논술이 길목을 가로막고 있으니, 논술을 딛고 갈 밖에.

 

하지만 논술 그것, 만만치 않아. 내신 관리하랴, 수능 공부하랴 벅차기도 하지. 그래서 논술 준비를 할까 말까 망설여져. 그런데 우리나라 4년제 대학 201개 가운데 45개 대학에서 논술로 약 5만2천명 뽑는대. 이들 대학의 경쟁률이 3대 1 정도라면 대략 16만명 정도가 논술을 준비해야 한다는 계산이야. 고3 학생 수가 61만명이니, 일반계 고교에서는 학급에서 3분의 1 안에 들면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지.

 

5~6명 조를 짜서 준비하라
붕어빵 답안 좋은 점수 못얻어
영화·칼럼·책 통해 토론 습관
사회적 이슈와 교과서 연계




방법이 뭘까. 우선 기출문제에 주목하는 거야. 이제까지 대학에서 출제된 논술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여러 현안과 관련된 근본적인 가치나 원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매우 의미 있는 자료거든.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기출문제를 주제별로 과목별로 수준별로 분류하는 거야.

 

현재 1학년인 학생들은 좀더 여유있게 준비를 시작하고, 선생님들이 이를 수행평가 과제로 제시하면 더욱 좋겠지. 기출문제 분류 자료를 토대로 1학년은 언어논술 위주로 하고, 2학년부터는 수리와 과학논술이 결합된 통합논술 맛을 좀 보고, 3학년은 대학별 논술을 본격적으로 익히는 거야. 중간, 기말시험 있는 달을 제외하고 매달 두 문제 정도 해결하면 한 해에 16문제 정도 익히게 돼.

 

다만, 논술은 혼자서 하라고 하면 못 해. 그러니 조를 짜서 해야 돼. 교육학에서도 어깨동무학습(Learning Together)이라는 게 있어. 이는 5~6명이 소모임을 이루어 주어진 과제를 협동으로 수행하는 거야. 과제도 집단적으로 수행하고, 평가도 집단적으로 받아. 학생 전부가 경쟁자인 현 내신제도 아래서 이런 협동학습이 효과가 있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니야. 학교에서 논술을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그러니 해야 해. 문제가 생기면 보완해야지, 시도 자체를 두려워하면 안 돼.

 

대학 교수들이 채점 끝내고 하나같이 붕어빵 논술에 질렸다던데, 이 문제도 학생들이 함께 하면 풀 수 있어. 논술은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주장’을 펴되, 이를 타당한 ‘근거’로 뒷받침해 주는 논리적인 글이지.

 

그런데 논술은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문에 숨겨 놓고 있으므로 그것을 찾아 쓰기만 하면 되니, 딱히 창의적이랄 수 없어. 창의적인 논술은 ‘예컨대’로 시작되는 ‘사례’에 달려 있지. 학생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례’야. 어떤 주제를 놓고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설과 칼럼을 읽고, 토론을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그러면서 서로 글을 첨삭하다 보면 세상이 새롭게 읽히거든.

 

괜히 통합논술 하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줄 아는데, 아냐. 기존의 논술하고 근본에서는 달라진 게 없어. 논술에는 주어진 문제를 정확히 분석하는 활동, 자신의 주장을 세우는 활동,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는 활동, 정리된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활동 등이 요구돼. 통합논술도 똑같아.

 

그렇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야. 문항 수가 많아진 것이 대표적 변화야. 통합논술은 단문항의 고전 텍스트형 논술에서 벗어나 수리 연산, 통계 도표, 그림 등을 제시하는 다문항 형태로 바뀌었지.

 

인문계는 언어와 수리 영역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것이 특징이고, 자연계는 언어 영역에 수리와 과학 영역이 통합된 것이 특징이야. 다시 말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전부가 논술에 그대로 활용된다는 거지. 통합논술을 준비할 때 교과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와.

 

문제는 통합논술에서 교과서의 활용 방법이 더욱 다양해졌다는 데 있어. 교과서의 지문을 발췌해 그대로 논술 지문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고, 교과서의 주요 개념과 내용을 활용해 이를 문제·해결에 적용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으며, 각 교과목의 내용을 통합하고 해체해 하나의 논의 속에 포괄시켜 출제하는 경우도 많아졌으니까.

 

그러니 교과서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해. 교과서를 꼼꼼히 읽어 각 과목의 주요 내용과 개념을 정리하는 건 기본이야. 내신과 수능에 필요하니까 당연히 해야지.

 

그런데 통합논술은 한 발자국 더 나가야 해. 과목간에 연계될 수 있는 공통 항목을 다시 정리해야 해. 하지만 현장에서 해 보니까, 학생들이 여기에서 숨막혀 하더라고. ‘논술’만 준비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겠지만, 스물몇 과목을 이렇게 하다가는 고등학교 한 5년 다녀야 할 걸. 그래서 내린 결론인데, 좋은 참고서 하나 골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학습하고, 그것과 관련된 교과서의 내용과 개념을 한데 묶어 나가며 차근차근 공부하는 거야.

 

이렇게 해서 체계적인 배경지식이 쌓이면 논술이 보여. 10년 넘게 논술을 지도하면서 내린 결론은 간단해. 논술은 배경지식이 좌우한다는 사실이야. 어떤 이는 논술을 일 주일 만에도 끝낼 수 있다고 하던데, 그것은 은유이거나 사기야. 특히 통합논술은 그럴 수 없어. ‘도레미파’를 안다고 해서 베토벤이 들리겠어?

 

논술은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를 지향하지. 맞아. 하지만 그것이 바로 논술의 최종 목표는 아니야. 역사적으로 한번 살펴볼까. 민중을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사상적으로 기만하던 봉건군주와 싸운 시민계급의 손아귀에는 뭐가 있었을까? 몽둥이가 아닌 신문이 쥐어져 있었어.

 

‘논술’이라는 무기가 바로 그것이야. 그들이 거짓 논리―그것을 좀 어렵게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하지―로 민중을 속이려 들 때 “당신 생각은 이 점에서 비판받아야 해” 하며 허위의식을 부순 거야. 논술이 진정 필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어.

 

김미희·문국식·박용성/여수지역 통합논술 지도교사 모임